Culture Essay 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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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사대 새 총장을 마주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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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3.12 14:23


 

 

 

 


고하라 가츠히로 총장의 특강 - 동지사 대학 2025 2 16


이승신의 로 쓰는 컬쳐에세이

            

동지사대 새 총장을 마주하며

 

올 해 2/16 일은 윤동주 시인의 80주기로 교토 동지사 대학에서 마침내 '명예문화박사학위증정' 이 있었습니다.

 

그 식에서 잘 아는 부학장에게 수여식이라고 했다가 수여는 대학에서 공부 마치면 주는 거지만 '증정'은 대학이 줌으로 대학이 오히려 영광이 되는 것이다~ 라고 한마디 말을 들었습니다.

 

몇 해 전 그 대학에 제가 입학할 때에 한국의 두 시인 윤동주 정지용의 시비가 섰는지도 모르고 갔으나 너무나 깨끗하고 아름다운 캠퍼스에 그 시비 앞만 지저분해 교실을 찾아 지나며 시든 꽃 술병 커피캔 편지 등을 매일 버리고 닦은 추억도 있고, 사모하는 시인이어 이번 행사에 당연히 가려 했습니다.

 

그러자 지난 두 총장도 따로 뵙고 인사했는데 새 총장이니 인사를 하자는 생각에 늘 신세지는 사카모토 교수 덕에, 고하라 총장과의 미팅이 이루어졌습니다.

 

일본에서는 전례前例가 없다면 절대 안되는 게 전통입니다. 

훌륭한 글로벌 졸업생도 많은데, 한 학기만 다니다 죽은 윤동주, 이름도 못 들어 본 학생의 시비 세우는 걸 계속 거절하다 작가 타고 키치로 씨가 다큐를 만들어 NHK 에 내보내고야 여러 해 만에 작은 시비를 세우게 된 건데, 사후死後엔 줄 수 없다는 예박사학위를 증정하는 건 더 더구나 안될 일이었습니다. 

 

그걸 고하라 가츠히로小原 克博 새 총장이 반대를 무릅쓰고 만들어 낸 것입니다. 실로 감격스런 일입니다.

 

그래 졸업 후 나온 '왜 교토인가?' 동지사 이야기가 든 제 책도 드리고 윤동주 명예박사증정을 졸업생으로 한국 시인으로 감사드리려는 마음이었습니다.

 

30분 미팅이 1시간이 되었는데 놀라운 건 2012년 동경에서 나온 제 책을 총장이 갖고오셔 사인해주기를 바랬습니다. 그 책이 나왔을 때는 제가 동지사에 가는 걸 꿈도 안 꾼 때여 책 날개에 그 이력도 없는데 어찌 아시고는 들고 오셨습니다.

 

거기다 제가 이 행사에 올 지도 모른 분이 윤동주의 날 특강에 제 시 두 수를 읊는다고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왜 그날 제 시를 읊을까,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인가,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대화 중 몇 번 그 분의 아~ 감탄사가 있었습니다.

 

미국 한국에서 TV 방송일을 하면서 25권 책을 내었다~

어머니 아오모리 시비가 3미터 가깝다~ 

일본 스승이 제자 손호연에게 조선의 아름다움을 쓰거라~

어머니가 일본 국회와 모교 대강당에서 강연을 하였다~

'왜 교토인가?' 제 책이 문학상을 받았다~

 

그분은 동지사대 신학박사로 튀빙겐 독일에서도 공부했고 한국어를 2년 배웠으며 스무 번이나 한국을 오셨다고 합니다.

다음엔 어려운 일어로 할 게 아니라 한국말로 해야겠습니다^.

 

손호연 시집과 전기집, 이미 사신 걸 모르고 가져온 일어판 저의 두 시집과 일어판 '왜 교토인가 1 & 2' 를 전하며 그날 드린 말을 아래에 적어 봅니다.

 

그분의 2/16 일 특강 이야기는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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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동지사 대학 총장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이번 윤동주 시인 명예박사학위 증정에 큰 감사를 드립니다.

일제시대 고생하다 가셨는데 사후死後 주지 않는 전례를 어렵게 깨고 증정해주시어, 졸업생으로 한국 시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이대 영문과, 워싱톤과 뉴욕에서 TV 방송학 공부를 하고 워싱톤에서 방송 일을 했는데 한국 정부에서 TV 방송으로 나라를 업그레이드 하자는 권유에 귀국 후, 한국 방송 일과 대학 강의, 삼성 고문 등을 하면서 25권의 저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부모님이 일제 시대 태어나 어머니는 동경에서 대학을, 아버지는 평양사범 후 만주 로스쿨을 나오셨는데, 일제시대여 어머니가 한국에서 교육도 일어로만 배웠고 (윤동주는 만주 한인촌이어 거기선 한글을 가르쳐 한글로도 시를 썼지만) 서울에선 학교에서 한국어를 하면 벌 서고 구치소로도 보내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진명 졸업 후 일본 여성인 방자 여사, 조선의 마지막 왕비가 동경으로 유학을 보내줍니다. 전공은 가정학이었으나 재능이 보여 일본의 레전드인 사사키 노브츠나를 사사하게 됩니다.

스승이 약속을 지키라 말하길, 중도에 단가 짓기를 포기하지 마라, 일본 흉내내지 말고 한국의 아름다움을 쓰거라~ 였습니다.

 

시집 출간을 하고 졸업 후 귀국, 서울의 일본 학교에서 교사를 하면서도 단가시를 지었는데 1년 후 해방되자 일어로 짓는 걸 비난받게 됩니다. 스승과 포기 안 하기로 약속했고 모국인 한국에선 일어로 쓰여 비난 받게 되자, 반세기 매일 매 순간 고뇌했다고 합니다.

 

1980년 연구로 동경에 와, 연호 레이와를 창안한 나카니시 스스무 선생에게 그 사연을 울면서 말하니, 단가란 원래 백제에서 온 거니 걱정말고 계속 하시라, 부여의 백마강을 보고 오면 더 좋은 시가 나올 것~ 이라는 말에 조국에 1000년 넘어 사라진 시를 내가 잇는 거로구나~ 를 깨우치곤 자부심을 갖고 시를 지었고 고단샤에서 7권 '무궁화' (한국의 국화國花) 단가집 시리즈와 전기집을 내었습니다.

 

천왕에게 '신년 단가회'에 대가로 초청받았으며 아오모리에 팬들이 높은 시비를 30년 전 세웠고, 가신 후 한국에선 한일정상회담 때 양국 정상이 어머니의 평화 시를 읊고서 회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고 일본 국민에게 사랑받은

어머니가 계시다면 힘 있는 시로 위로할 텐데~ 안타까웠는데 일본인들이 저보고 써달라 해 나는 배운 적이 없다, 못 한다~ 거절하다 TV 쓰나미 영상에 가슴이 벅차 250 수의 시가 쏟아졌습니다.

 

신문을 본 독자들이 전체 시를 보여달라고 전화가 신문사로 쇄도하여 마침내 시집과 가집 2권이 양국에서 출간되고 큰 반향이 되어 매달 일본에 와서 강연과 연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키타 시에선 유명 음악인이 제 시를 작곡해 9월마다 콘서트를 해 매해 제가 연설과 시를 낭송하고 무대에 앉아 오케스트라와 합창을 듣고 게센누마 센다이 미야기 등 3.11 행사에 연설을 합니다.

 

감동 스토리 중, 동경대학 하마다 총장이 그 시집들을 보고 저를 초청해 평을 하는데 각기 두 권에 대한 평에 놀라, 전공이 문학인가? 물으니 법률이라 해 '일본은 문학의 나라' 라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동일본의 영정들에게 책들을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평범한 제 스피치에 감격을 할수록 일어로 번역을 한 것이고 일어도 모르고 일본 역사도 배운 적이 없어 양심에 걸려, 동지사대학에 와서 일어와 고전 문학을 공부하게 된 것입니다.

 

한 미 일 3 나라 대학을 나온 셈으로 3 대학을 비교하게도 되는데 20 과목을 패스해야 졸업하는 이 대학이 재미있으면서도 가장 어려웠습니다. 도서관에서 젤 늦게 나오는 사람으로도 알려졌고요.

 

부모님 동창들로 동경에 인연이 있으나 한국에서 가까워 교토를 택한 건데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동지사도 한국 미국의 제 대학처럼 크리스챤 대학이고 윤동주 정지용 한국 시인의 시비가 서있어 어려운 시기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아쉬운 건 학생들이 그 시인들을 모른다는 것과, 정지용 시인이 윤동주가 바라보지도 못 할 정도로 훌륭한 시인인데 그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입니다.

 

창립자가 150년 전 세운 일본 최초의 예배당에서 늘 기도했고 에이코깐榮光館에서 주일 예배도 보았습니다. 창립자 니이지마 조,

그의 인품과 리더십, 도전정신과 사랑을 알게 되어 감사합니다.

 

미국 살 때 매사츠세츠의 앰허스트 대학에 갔으나 젤 중요한 자리에 니이지마 초상화가 걸린 건 몰라 다시 가 그걸 보았고, 일본 외교관들이 그리로 연수 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11월 말 기일이면 그의 산소 언덕으로 학생들과 올라갑니다.

 

졸업 후 한어 일어로 <왜 교토인가?> 4권을 냈고 동지사, 니이지마 조, 윤동주, 정지용, 가모가와, 제가 살던 데마치 동네 등이 이 책에 들어있습니다.  

 

어머니가 다니신 대학이 사가미 대학이 되었는데 일본 국회에서 강연하고 사가미 대학 100주년 기념 대강당에서 자랑스런 졸업생으로 특강도 하고 손호연 룸도 그 대학에 있습니다.

 

아오모리의 시비가 훌륭한데 한국에서 좀 멀어 캠퍼스에 시비가 있으면 하고, 거기 총장과 상담하니 손호연 선생이 자랑스런 졸업생으로 훌륭한 걸 잘 아나 전례가 없어서~ (이 지점에서 경험 있는 고하라 총장이 웃음)

그러나 윤동주 시비도 여러 해 거절 받다 후에 되었으니 사가미 대에도 언젠가 시비가 설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미국통으로 '한미관계'에 기여하고 있고 모녀시인으로 문학과 문화를 통한 한일관계에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문화외교> 를 해야 한다고 한국 대통령에게 최초로 그 어휘를 썼고 후 한국 외교부에 '문화외교국'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가치와 자유 민주주의 이념이 같으니 '모녀시인의 평화의 시'에 나오듯 좁아진 세계, 앞으로도 가깝고 친밀한 우호관계이기를 바랍니다.

 

        이웃해있어 마음에도 가까운 나라 되라고 

                       무궁화를 보다듬고 벚꽃을 보다듬네

 

                                                     손호연

 

        쓰라린 역사를 다 잊을 순 없지만

                   앙금 내려놓고 성숙한 평화를 기원하다

 

                                                     이승신

 

 

 

고하라 가쯔히로 총장과 - 교토 동지사 대학 2025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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