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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바람과 별 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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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3.14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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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신의 로 쓰는 에세이

 '하늘과 바람과 별 과 시'

 

 

그의 눈빛은 선했다. 

 

스무 일곱에 가며 서너 장 남긴 확대된 흑백사진은 교토에서 영상을 찍을 때도 보았지만 이 날은 온종일 그 얼굴을 바라다보았다. 

 

그의 시는 그의 얼굴을 빼닮았다.

 

2월 16일 그의 기일이면 시비 앞에서 헌화식이 있지만 올 해는 그게 80주기가 되고 대학이 윤동주에게 '명예문화박사학위'를 증정하는 날이기도 하다. 

 

주일이어 오전 예배가 있고 창립자 니이지마 조가 150년 전 학교 건물 중 제일 먼저 지었고 일본 내 최초이기도 한 예배당에서 윤동주 시인의 영정 사진을 앞에서 윤인석 교수에게 명예박사학위가 증정됬고, 만주의 무덤 대신 바로 옆 시비 앞에서 인사말과 학생이 일어 한국어로 '서시'를 낭송하고는 하얀 국화 한 송이 씩 시비 앞에 놓고 절을 했다.

 

 

 

 

줄이 길어 두어 시간 걸리고는 다시 예배당으로 들어가 동지사대 고하라 가츠히로小原克博 총장의 1시간 넘는 특강을 듣고 그리고는 먼 곳에서 온 분들을 위한 저녁 만찬까지, 온종일을 윤동주에게 바친 대단한 날이었다.

 

일본 시인의 말마따나 윤동주는 '요절한 특권'이 있다 하나 북간도에서 태어나 평양으로 서울로 다시 동경 릿쿄대로 교토로 그리고 후쿠오카로 6 도시를

짧은 생애 오로지 식민지 시대를 살다 간 걸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1950년 경 그 여성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가 윤동주의 시를 인용해 쓴 수필 '한글로의 여행'이 교과서에 실리고서 일본에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동지사 대학이 윤동주를 알게 된 건 그보다 훨씬 뒤인 1994년 작가 타고 키치로 씨가 만든 윤동주 다큐가 공영방송 NHK에 나오고서부터다. 계속 거절해 온 시비를 허락한 것도 그 방영 후였다.

 

타고 씨에게 들은, 대학에서 시비 허가 받기까지의 이야기도 길지만 사후死後 주는 전례 없는 명예박사학위는 더 어려운 일이었다. 고하라 총장이 '학장단 회의' 로 사자死者에게 주는 예외를 인정하게 했다. 총장의 추진력과 힘이라고 생각한다.

 

1943년은 일제시대이기도 하지만 전쟁 중이기도 했다. 

윤동주는 한국을 가기로 마음 먹었고 친구들과 우지宇治에 소풍을 가 마지막 사진을 남기기도 했는데, 그 무렵 '조선인 민족주의 그룹' 에 가담한 혐의로 교토 경찰에 붙잡혀 후쿠오카 형무소로 보내졌고 거기서 옥사를 했다.

 

'시대 추세에 저항하지 못하고 학생 하나를 지켜주지 못 한 미안함, 전쟁의 시대 희생자가 된 학생들 중에 윤동주 라는 소중한 학생이 있었다는 걸 기억하고 역사의 그 교훈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는 총장의 말에 감동하며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니이지마 조가 당시 이름 없는 제 3국에서 온 학생 하나를 구하기 위해 다른 것들을 희생하자 주위에서 뭐라고 하니, 한 사람 한 생명이 귀한 것이다~ 라고 했다. 

학교 다닐 때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감동을 했다. 어딘가 학교 건물 앞면에 그 말이 새겨져 있기도 하다. '제군이여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하라~'

 

'윤동주를 말하다尹東柱を語る' 를 제목으로 한 고하라 총장의 강연은 훌륭했다.

 

 

 

 

한국 유학생이 가장 많다는 동지사 대학과 한국과의 관계, 그리고 히로시마 원폭 체험의 증언자였던 총장의 할아버지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그가 독일 유학에서 접한 독일과 일본의 전쟁 책임 이해에 관한 연구 '기억을 전하기 위해선 많은 사람이 그 기억을 공유하는 문화를 키우고, 더 나아가 보편성을 가진 더 큰 기억의 문화로 키우는 게 중요하다'  (오카 히로토의 '망각에 저항하는 독일')  인상적인 이 문구가 윤동주를 잊지 않으려는 것과도 연계가 된다.

 

윤동주 시의 역동성과 문학적 기법, 그의 시의 정치성, 윤동주와 양심 등 다양한 테마로 윤동주를 세세히 발표하며 '자화상' '십자가' '서시' '쉽게 쓰여진 시' 4개의 주옥 같은 시를 읊기도 했다.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 11 20)

 

식민지 지배와 전쟁은 국가에 의해, 그런가 하면 자연 재해로 인한 대지진 쓰나미 폭우 등 자연의 힘에 의해 발생한다는 점에서 원인과 배경은 다르나,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 당하고 표현할 수 없는 부조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시詩는 부조리 속에 있는 사람들의 비탄을 향한다~ 며

 

나의 시집 '그대의 마음 있어 꽃은 피고 - 이웃나라 친구에게 보내는 192편의 시로 쓰는 편지 동경 아스카신샤 출간' 의 두 수를 직접 선택해 읊기도 했다.

 

그 책이 나왔을 때는 동지사 대학에 갈 생각도 전혀 안 하던 때였고, 내가 윤동주 날에 참석할 지도 모르셨는데 신기한 일이다.

 

         <평화>

          쓰라린 역사를 다 잊을 순 없지만

          앙금 내려 놓고 

          성숙한 평화를 기원하다

 

         <관계>

          아픈 역사 있어 

          그대 아픔 껴안을 수 있나니

          새로이 싹이 트는 우리의 관계

 

동지사 코리아 동창회가 중심으로 NHK 다큐가 도움이 되어 1995년 윤동주 시비가 좋은 위치에 섰지만, 몇 해 전 내가 다닐 때도 보면 거기를 지나거나 그 앞 12 개 긴 벤치에 앉아 있는 학생에게 저 시인들을 아느냐고 말을 걸면 아무도 몰라 그 앞에서 설명해주고 새겨진 시를 읽어주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2025년은 윤동주 80주기, 시비 건립 30주년, 일본 전후 80주년,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하는 가운데 그 역사 속에 윤동주가 있음을 기억하고 그 한 학생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 한 걸 교훈으로 새기면서 새로운 미래를 나아가려는 모습이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온다.

 

열정적인 총장의 강연에서 동지사 대학을 통해서 윤동주를 통해서 한일 양국의 우호를 바라는 진심을 나는 보았다. 그는 한국어도 2년 간 배웠고 한국을 1988년부터 스무 번이나 가며 한국과 윤동주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키워왔다.

 

우리가 일본이 과거 역사에 대한 사과가 부족하단 말을 하지만 어떤 면에서 역사 깊은 대학의 지성인들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깊이 받게 된다.

 

이 특별한 날 훌륭한 강연에 상상치도 못한 제 시가 읊어지고 총장이 일으켜 세워 인사까지 하니 감사하고 영광 된 순간이었다. 

 

105세 김형석 교수가 일생 알아온 수많은 사람들 중 가장 성공한 사람은 평양 숭실학교 한 반이었던 윤동주였다~ 가 떠오르는 순간이기도 하다.

 

 

 

 

윤동주 '명예문화박사학위' 증정식 - 동지사대 예배당 2025 2 16

 

 

인사말 하는 주호영 한일의원연맹 회장 - 윤동주 시비

 

 

윤동주 80주기에 국화 한 송이 올리려 긴 줄에 서다

 

 

윤동주 한 일 전기집과 NHK 다큐를 만든 타고 키치로 작가

 

 

교토 동지사 윤동주 동창회 박희균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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